아침 햇살은 밤의 공포를 얇게 만들었지만, 지우지는 못했다.
수진은 노트를 가방에 넣고 마을로 나갔다. 먼저 들른 곳은 박씨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어머니가 부적을 부탁했다던 사람. 마을에서 유일하게 무속 일을 하는 사람.
박씨 아주머니는 대문 앞에서 고추를 널고 있었다. 수진을 보자 손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수진아, 들어와. 차 한잔 하자."
부엌은 따뜻했고 곳곳에 말린 약초 다발이 걸려 있었다. 수진은 노트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어머니 방에서 찾았어요."
아주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부적도요. 벽 전체에 붙어 있었고요. 창문에 붉은 실, 문지방에 소금." 수진은 아주머니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어머니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고 싶어요."
긴 침묵이 흘렀다. 부엌의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너는 이 마을 사람이니까." 아주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을 자격은 있다. 하지만 다 말할 수는 없어.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
"왜요?"
"입에 올리면 부르는 거야."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1987년, 네가 태어나기도 전이야. 그해 여름 가뭄이 들었어. 삼 개월째 비가 안 왔고, 논이 다 말랐지. 마을이 끝나게 생겼어."
"그래서요?"
"마을 어른들이 모였어. 김 이장 아버지, 최 노인, 너희 외할아버지까지. 산 위에 있는 당집에서." 아주머니의 손이 찻잔을 감쌌다. "거기서 뭘 했는지는 나도 정확히 몰라. 하지만 그 뒤로 비가 왔어. 마을이 살았어. 그리고 아이 하나가 없어졌어."
수진의 등이 차가워졌다.
"아이요? 누구의 아이요?"
"이름을 부르면 안 돼." 아주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제대로 보내지 못했어. 장례도, 제사도 없이. 산 어딘가에—" 목소리가 꺾였다. "40년이야. 40년 동안 그 아이가 이 마을 주변을 맴돌았어. 붉은 달이 뜰 때마다 누군가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고, 누군가 그림자를 봤고."
"그래서 어머니가 부적을 — "
"네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어.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전부 말해줬으니까. 네가 위험하다는 것도."
"내가요? 왜요?"
아주머니가 잠시 수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연민이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수진을 향한 두려움.
"그건 네 어머니 노트에 있을 거야." 아주머니가 일어섰다. "수진아, 한 가지만 약속해. 붉은 달이 뜨는 날 밤, 절대 밖에 나가지 마. 아이가 불러도,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도, 문을 열지 마."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감나무 아래를 지날 때 — 한낮인데도 —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작은 발. 아이의 발.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낙엽만 바람에 굴러갔다.
하지만 돌담 위, 오래된 감나무 가지 사이로, 무언가가 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시선. 차갑고, 참을성 있고, 굶주린 시선.
수진은 걸음을 빨리했다. 뛰지는 않았다. 뛰면 쫓아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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