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세 시간 반을 달려 홍월리 정류장에 섰다. 정류장이라고 해봐야 녹슨 표지판 하나와 시멘트 벤치 하나가 전부였다. 수진은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서울에서 입고 온 코트가 산바람에 무력하게 펄럭였다.
10월의 홍월리는 기억보다 작았다. 아니, 수진이 커진 것이다. 열다섯 살에 떠날 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마을이 이제는 손바닥 위의 풍경처럼 아담했다. 낡은 슈퍼, 폐교된 분교, 감나무가 줄지어 선 돌담길. 모든 것이 그대로였고, 그래서 오히려 낯설었다.
장례식장은 마을 회관이었다. 화환이 다섯 개 놓여 있었고, 조문객은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수진은 절을 받으며 얼굴들을 훑었다. 김 이장, 박씨 아주머니, 최 노인. 다들 늙었다. 하지만 표정은 수진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 친절하되 경계하는, 웃으면서도 입을 다무는 그 특유의 표정.
"수진아, 어머니 편히 가셨다."
김 이장이 말했다. 수진은 고개를 숙였다. '편히'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장례식장에서 따질 일은 아니었다.
밤이 되어 어머니의 집에 들어섰을 때, 수진은 냄새를 먼저 느꼈다. 한약 냄새도, 늙은 집 특유의 눅눅함도 아닌 — 태운 종이 냄새. 부적을 태우는 냄새.
거실은 깨끗했다. 누군가 치운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방은 달랐다. 문을 여는 순간, 수진은 숨을 멈췄다.
벽. 벽 전체가 부적으로 덮여 있었다. 노란 한지에 붉은 글씨, 수백 장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창문에는 붉은 실이 격자무늬로 매여 있었고, 문지방에는 굵은 소금이 한 줌 뿌려져 있었다.
"뭐야, 이게..."
수진은 한 발 더 들어섰다. 침대는 정돈되어 있었지만, 이불 위에 손톱 자국이 있었다. 긁힌 자국. 무언가를 — 혹은 누군가를 — 필사적으로 밀어내려 한 흔적.
침대 밑에서 노트를 발견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낡은 대학노트, 어머니의 필체.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수진의 손이 떨렸다.
"3월 15일. 꿈에 또 아이가 나왔다. 이번에는 수진이 방 앞에 서 있었다. 웃고 있었다."
"5월 2일. 박씨 아주머니에게 부적을 더 부탁했다. 모자란다. 항상 모자라다."
"9월 28일. 아이가 돌아오고 있다. 붉은 달이 뜨면 아이가 온다. 이번에는 수진이를 데려갈 것이다."
수진은 노트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는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창밖을 보았다. 산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보름에는 며칠 남았지만, 달빛이 유난히 붉었다. 감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돌담길에 —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수진은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놓은 대로, 문지방의 소금을 다시 고르게 폈다.
그날 밤, 수진은 아이 웃음소리를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문의 붉은 실 한 가닥이 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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