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자 수진은 어머니의 노트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부적의 냄새가 배어든 방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어머니의 떨리는 글씨를 따라갔다. 노트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40년에 걸친 기록이었다 —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자기 자신의 목격담을 더하고, 마을의 비밀을 조각조각 맞춰나간 결과물.
"1987년 8월 3일 (외할아버지 구술). 당집에 모인 사람: 김영철, 최판수, 나(이동수), 박무현, 정해일. 다섯 명이 제를 올렸다. 무당 박씨가 말하기를, 가뭄을 풀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했다."
수진은 페이지를 넘겼다.
"대가는 아이였다. 마을에서 가장 어린 아이. 정해일의 딸."
딸. 수진의 손이 멈췄다. 정해일. 그 이름은 — 마을 동쪽 끝, 오래전에 빈 집이 된 그 집. 수진이 어릴 때 "가면 안 되는 집"이라고 배운 그곳.
"아이를 당집 뒤 바위굴에 두었다. 잠이 들게 한 뒤. 굴을 막았다. 비가 왔다. 사흘 만에 비가 왔다."
수진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실제로 한 거야. 아이를 산에 —
"비가 온 뒤, 정해일이 아이를 찾으러 갔다. 이미 늦었다. 아이는 죽어 있었다. 정해일은 미쳐서 마을을 떠났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장례도 없었다."
이후 노트의 필체가 어머니의 것으로 바뀌었다. 날짜는 2000년, 수진이 네 살이던 해.
"아버지(외할아버지)가 병석에서 나에게 말했다. 40년마다 붉은 달이 뜬다. 그때마다 아이가 돌아와 빚을 받으러 온다. 첫 번째 붉은 달에는 김영철이 죽었다 — 심장마비라고 했지만 표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두 번째에는 최판수의 아들이 산에서 실종됐다."
"아버지가 말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 그리고 아이는 어린것을 노린다."
어린것.
수진은 2000년에 네 살이었다.
노트의 마지막 부분은 어머니가 죽기 직전 몇 주간의 기록이었다. 글씨는 점점 흐트러졌고, 문장은 점점 짧아졌다.
"부적이 약해지고 있다. 박씨가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다."
"밤마다 소리가 들린다. 마루 밑에서. 긁는 소리."
"아이가 꿈에 나왔다. 이번에는 말을 했다. '언니, 나 추워.'"
언니. 수진의 어머니를 언니라고 부르는 아이.
"수진이가 서울에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 오면 안 된다. 내가 막아야 한다. 내 대에서 끝내야 한다."
마지막 기록.
"10월 12일. 오늘 밤 당집에 간다. 부적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제대로 보내줘야 한다. 40년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못 돌아올 수도 있다."
그 다음 페이지는 비어 있었다.
수진은 노트를 덮었다. 어머니는 10월 13일에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집 안에서, 방 안에서.
당집에 다녀온 뒤인 것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확실했다. 어젯밤 끊어진 붉은 실이 그 증거였다.
수진은 창밖을 보았다. 달이 어젯밤보다 더 둥글었고, 더 붉었다.
보름까지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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